와인을 즐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욕심이 나는 아이템이 바로 ‘와인잔’입니다. “잔이 바뀐다고 와인 맛이 달라질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히 달라진다”입니다.
하지만 시중에는 품종에 따라 수십 가지 모양의 잔이 존재합니다. 와인에 갓 입문한 초보자가 이 모든 잔을 처음부터 구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와인잔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내 취향과 예산에 맞는 ‘인생 와인잔’을 찾을 수 있도록 종류와 브랜드별 특징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와인잔의 기본 해부학 (구조와 명칭)
와인잔은 단순히 예쁘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닙니다. 각 부위는 와인의 향과 맛을 최적화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림 (Rim): 입술이 닿는 잔의 가장자리입니다. 림의 두께는 와인의 맛을 느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림이 얇을수록 와인이 입안으로 매끄럽게 흘러들어가 미각세포에 닿는 느낌이 좋아지며, 이는 고가 와인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림의 지름이 좁을수록 와인의 향이 날아가지 않고 잔 속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 볼 (Bowl): 와인이 담기는 몸통 부분입니다. 보통 레드 와인을 따를 때 볼의 가장 넓은 부분(약 30%)까지만 채우고, 나머지 빈 공간은 향(Aroma)으로 채우게 됩니다. 볼의 너비에 따라 공기와의 접촉면이 달라져 와인의 맛이 변합니다.
- 스템 (Stem): 와인잔의 다리, 즉 손잡이 부분입니다. 와인은 온도에 민감한 술입니다. 스템을 잡음으로써 손의 체온이 볼에 전달되어 와인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방지합니다.
- 베이스 (Base): 잔을 지탱하는 받침대입니다. 저가형 잔의 경우 베이스를 따로 만들어 스템에 붙이기 때문에 이음새 자국이 남는 경우가 많지만, 고급 잔은 일체형으로 매끈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2. 형태별 와인잔 종류와 용도 (대표 6종)
수많은 와인잔 중, 어떤 와인을 주로 마시느냐에 따라 선택해야 할 잔이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6가지 유형을 소개합니다.

① 유니버셜 와인 글라스 (Universal Wine Glass)
가장 실용적인 선택입니다. 레드, 화이트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와인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표준형 잔입니다. 데일리 와인을 주로 즐기거나, 수납공간이 부족해 “딱 하나의 와인잔만 사야 한다”면 고민 없이 유니버셜 글라스를 추천합니다.
② 보르도 글라스 (Bordeaux Glass)
타닌이 강하고 묵직한 고급 레드 와인(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즐길 때 필수입니다. ‘Oversized Wine Glass’라고도 불리며, 입구와 바디가 넓어 와인이 혀의 안쪽까지 넓게 퍼지게 합니다. 이를 통해 타닌의 떫은맛을 부드럽게 완화해주고 복합적인 풍미를 살려줍니다.
③ 버건디 글라스 (Burgundy Glass)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피노 누아 같은 섬세한 와인을 위한 잔입니다. ‘Aroma Collector’라는 별명처럼, 볼이 둥글고 넓어 와인의 향기를 잔 안에 가득 모아줍니다. 산도가 높고 향이 중요한 와인을 마실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④ 화이트 와인 글라스 (White Wine Glass)
유니버셜 잔보다 볼의 크기가 작고 좁습니다. 이는 화이트 와인의 생명인 ‘차가운 온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좁은 입구는 화이트 와인 특유의 상큼한 과일 향과 꽃향기를 코로 바로 전달해 줍니다.
⑤ 플루트 글라스 (Flute Glass)
샴페인 등 스파클링 와인을 마실 때 사용하는 길쭉한 잔입니다. 좁고 긴 형태 덕분에 탄산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다만, 입구가 좁아 향을 충분히 느끼기엔 한계가 있어 최근 고급 빈티지 샴페인은 향을 즐기기 위해 화이트 잔이나 유니버셜 잔에 마시는 추세입니다.
⑥ 디저트 와인 글라스 (Dessert Wine Glass)
포트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처럼 도수가 높고 단맛이 강한 와인을 위해 작게 제작된 잔입니다. 소량씩 마시기에 적합하지만, 필수 구비 아이템은 아닙니다.
3. 와인잔 대표 브랜드 총정리 (가격 및 특징)
와인잔 브랜드는 역사와 기술력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입니다. 가성비 라인부터 하이엔드 라인까지 정리했습니다.
(가격대는 온라인 판매가 기준이며, 모델별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가성비 & 입문용 추천



- 슈피겔라우 (SPIEGELAU)
- 가격: 1~5만 원대
- 독일 바이에른 지역에서 시작된 500년 역사의 브랜드입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내구성이 좋고 가격 접근성이 뛰어나 ‘국민 와인잔’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데일리용으로 가장 추천합니다.
- 쇼트즈위젤 (Schott Zwiesel)
- 가격: 7천 원 ~ 3만 원대
- 150년 전통의 독일 브랜드로, 세계 미식가 협회 공식 와인잔입니다. 특급 호텔의 90%가 사용할 만큼 내구성과 디자인이 검증되었습니다. 식기세척기 사용에도 강해 실용성을 중시하는 분들에게 적합합니다.
- 자페라노 (Zafferano)
- 가격: 1.5 ~ 5만 원대
- 이탈리아 무라노 출신의 디자이너 페데리코 데 마요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특유의 물결무늬 디자인이나 얇은 두께감이 특징이며,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하이엔드 & 전문가용 추천



- 리델 (RIEDEL)
- 가격: 5 ~ 20만 원대 이상
- 1756년 오스트리아에서 설립되어 “포도 품종별 맞춤 잔”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한, 와인잔의 기준이 되는 브랜드입니다. 1961년 개발한 긴 스템의 형태가 현대 와인잔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스템에 컬러를 입힌 화려한 디자인(파토마노 시리즈 등)이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잘토 (Zalto)
- 가격: 6 ~ 10만 원대
- 와인 애호가들의 ‘꿈의 잔’입니다. 2000년대 초, 유리공예가 잘토 가문과 와인 전문가 한스 덴트 신부의 합작으로 탄생했습니다.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핸드 블론(Hand-blown)’ 방식을 고집하며, 깃털처럼 가볍고 얇은 두께가 주는 입술의 감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 조세핀 (Josephine)
- 가격: 10 ~ 15만 원대
- 잘토의 창시자인 디자이너 쿠르트 잘토가 기존 회사에서 나온 뒤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입니다. 잘토만큼 얇지만, 잔의 허리 부분에 독특한 굴곡(Kink)을 주어 와인의 산소 접촉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가장 트렌디하고 고가의 잔 중 하나입니다.
마무리하며: 어떤 잔을 사야 할까?
와인잔 선택이 고민되신다면, 보통 ‘슈피겔라우’, ‘쇼트즈위젤’, ‘리델’을 세계 3대 와인잔 브랜드로 꼽으니 이 중에서 선택하시면 실패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2000년대에 ‘리델’이 독일의 거대 크리스탈 회사인 나흐트만과 그 자회사인 ‘슈피겔라우’를 인수했다는 점입니다. 즉, 현재 이 세 브랜드는 사실상 같은 계열사 식구인 셈이죠.
[추천 구매 가이드]
- 입문자: 유니버셜 글라스 2개 (슈피겔라우 or 쇼트즈위젤)
- 중급자: 즐겨 마시는 품종에 따라 보르도/버건디 글라스 추가 (리델)
- 애호가: 특별한 날을 위한 핸드메이드 글라스 (잘토 or 조세핀)
처음부터 무리하기보다는 내 와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하나씩 잔을 모아가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